직접 부딪히지 않았거나 앞선 사고가 있었을 때: 비접촉 사고와 2차 사고의 책임
“제 차는 닿지도 않았는데 상대 오토바이가 혼자 넘어졌습니다.” “앞에서 이미 사고가 나 있었고, 저는 그 뒤에 부딪혔을 뿐입니다.” 교통사고 형사 상담에서 자주 듣는 말입니다. 두 경우 모두 운전자는 자신이 사고의 원인이 아니라고 느끼지만, 법은 접촉 여부나 순서만으로 책임을 정하지 않습니다. 비접촉 사고와 2차 사고에서 책임이 어떻게 판단되는지, 무엇을 다툴 수 있는지 정리합니다.
부딪히지 않아도 교통사고가 될 수 있습니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은 교통사고를 ‘차의 교통으로 인하여 사람을 사상하거나 물건을 손괴하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접촉은 요건이 아닙니다. 내 차의 무리한 진로 변경이나 유턴 때문에 상대가 피하다 넘어졌다면, 내 운전과 상대의 부상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서울서부지방법원은 2024. 8. 22. 선고한 항소심(2023노1354)에서, 유턴 구역이 아닌 실선 구간에서 급하게 유턴한 차를 피하려다 오토바이 운전자가 넘어진 사고에 대해 피해자에게도 과실이 있지만 유턴과 사고 사이의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보고, 현장을 떠난 운전자의 도주치상 등 유죄를 유지했습니다. 버스 앞으로 차로를 바꾸는 바람에 버스가 급정거해 승객이 다치는 사고도 같은 구조입니다.
비접촉 사고에서 따져 볼 네 가지
- 원인: 상대가 넘어진 것이 내 운전 때문인지, 상대의 과속·전방주시 소홀이나 노면 상태 때문인지를 영상으로 확인합니다.
- 과실: 내 진로 변경이나 출발이 통상적인 운전 범위였는지, 상대가 이를 예상할 수 있었는지를 봅니다.
- 상해: 넘어진 정도와 진단 내용이 형법상 상해에 이르는지 살핍니다.
- 사고 인식: 충격이 없으니 사고가 난 줄 몰랐다는 주장이 접촉 사고보다 설득력을 갖기 쉽습니다. 도주치상은 사람이 다친 사실을 알고 떠난 경우에만 성립하므로, 백미러로 볼 수 있었는지, 상대가 경적이나 손짓으로 알렸는지가 쟁점이 됩니다.
2차 사고: 앞선 사고로 멈춰 있던 차와 사람
앞서 난 사고로 차로에 멈춰 선 차나 도로에 쓰러진 사람을 뒤따르던 차가 다시 충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뒤차 운전자의 책임은 ‘발견하고 피할 수 있었는가’로 판단됩니다.
- 앞차를 따라가던 경우: 대법원은 앞차에 가려 전방 시야가 제한되는 만큼 충분한 안전거리를 두고 전방을 살펴야 한다고 보고, 야간에 비가 오는 내리막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고 앞차를 바짝 따라가다 이미 쓰러져 있던 피해자를 역과한 운전자의 과실을 인정했습니다(대법원 2001. 12. 11. 선고 2001도5005 판결).
- 고속도로인 경우: 대법원은 고속도로 운전자에게 보행자가 무단으로 들어올 것까지 예상해 대비할 주의의무는 원칙적으로 없고, 상당한 거리에서 발견해 피할 수 있었던 경우에만 과실이 인정된다고 했습니다(대법원 2000. 9. 5. 선고 2000도2671 판결).
사망사고라면 어느 충격이 사망 원인인지도 따로 가려야 합니다. 앞의 2001도5005 판결은 부검에서 골절 부위의 생활반응 등이 확인된 점을 근거로 뒤차의 역과와 사망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했습니다. 반대로 이미 숨진 뒤의 충격이었다면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앞선 사고의 운전자 역시 자기 사고에 대한 책임과 함께, 고속도로 등에서는 뒤차가 알 수 있도록 표지를 설치하는 등의 조치 의무(도로교통법 제66조)를 지켰는지가 문제됩니다.
쓰러진 사람을 역과하고 떠났다면
2차 사고 뒤 현장을 떠나 도주치사 혐의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도주치사상은 과실로 사람을 사상한 운전자를 전제로 하므로, 사고를 피할 수 없었다는 점이 밝혀지면 도주 혐의도 성립하지 않습니다. 태신이 맡은 사건 중에도 도로교통공단 분석으로 반응 시간과 제동거리를 따져 회피가 불가능했다는 점을 보여 도주치사 혐의없음 처분을 받은 사례가 있습니다. 다만 무언가를 밟은 충격을 느끼고도 확인하지 않았다면 사고 인식이 인정될 수 있어, 이 부분은 신중하게 다뤄야 합니다.
정리
비접촉 사고는 ‘닿지 않았다’가 아니라 ‘내 운전이 원인이었는가’로, 2차 사고는 ‘나중에 부딪혔다’가 아니라 ‘발견하고 피할 수 있었는가’로 판단됩니다. 두 경우 모두 여러 대의 블랙박스를 시간순으로 맞춰 보는 작업이 결론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고, 사고 직후 영상 확보가 가장 먼저입니다. 같은 유형이라도 도로와 시야 조건에 따라 판단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