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퀴 고무만 스친 진로변경 사고, 뺑소니로 송치됐지만 검사 단계에서 혐의없음
혐의없음(증거불충분)
교차로에서 다른 차를 피하다 상대 차량 뒷부분을 스친 운전자가 한 달 뒤 도주치상으로 고소됐습니다. 경찰은 송치했지만, 사고를 몰랐다는 정황이 하나씩 확인되며 검사는 혐의없음으로 판단했습니다.
차끼리 한 번도 닿지 않았는데 뺑소니 피의자가 될 수 있을까요. 법적으로는 가능합니다. 이 사건은 배달 오토바이 운전자가 비접촉 사고로 도주치상 신고를 당했지만, 도주치상은 물론 가벼운 교통사고 치상 혐의까지 모두 혐의없음 처분을 받은 사례입니다.
의뢰인은 원동기장치자전거로 배달 일을 하던 사람입니다. 낮 시간 편도 1차로 도로에서 앞서가던 승용차를 앞질렀고, 별일 없다고 생각해 배달지로 향했습니다. 얼마 뒤 승용차 운전자가 신고를 했습니다. 오토바이가 경적을 울리고 황색 실선을 넘어 앞지른 뒤 갑자기 속도를 줄이는 보복성 운전을 했고, 이를 피하려 급제동하다 다쳤는데 그냥 가 버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의뢰인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상 피의자가 됐습니다.
도주치상은 접촉이 없어도 성립할 수 있고, 1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 정해진 무거운 죄입니다. 게다가 중앙선 침범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보험·합의가 있어도 처벌이 가능한 중과실 항목입니다. 영상에 남은 중앙선 침범이 있으니 급제동·부상·도주가 한 덩어리로 받아들여지기 쉬운 구조였습니다.
비접촉 사고에서 도주치상이 되려면 ① 내 운전 때문에 상대가 급제동했고 ② 그 급제동으로 다쳤으며 ③ 그 사실을 알고 떠났다는 세 고리가 모두 증명되어야 합니다. 하나라도 비면 도주치상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생계가 운전에 달린 의뢰인에게는 면허까지 걸린 문제였고, 사고가 난 줄도 몰랐던 사람에게 ‘도주’라는 이름이 붙는 것 자체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변호인은 중앙선을 넘어 앞지른 사실은 그대로 인정했습니다. 영상에 있는 사실을 부인하면 나머지 진술까지 믿기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대신 그 앞지르기가 곧바로 도주치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며, 세 고리를 따로따로 따지는 틀을 세웠습니다.
근거로 삼은 것은 오히려 신고인이 낸 블랙박스였습니다. 신고인 쪽 자료가 신고 내용을 뒷받침하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설득력 있는 반박도 없습니다. 영상에는 오토바이가 앞지른 뒤 급제동하는 장면이 없었고, 실내 영상 속 신고인에게도 급정거 때 생기는 몸의 쏠림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같은 영상에서 신고인은 신고하겠다는 말만 했을 뿐 사고가 났다거나 다쳤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현장에서조차 사고와 부상이 서로 드러난 적이 없었는데, 이미 앞서 지나간 오토바이 운전자가 뒤의 일을 알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몸의 움직임조차 없었다면 통증 호소에 기댄 진단서만으로 상해를 단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대법원도 주관적 통증 호소에 의존한 진단서는 증명력을 신중히 따져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 주장은 무거운 도주치상뿐 아니라 그보다 가벼운 교통사고 치상 혐의까지 함께 다투는 축이 됐습니다. 영상을 어느 한쪽 주장의 근거가 아니라 양쪽 주장을 검증하는 기준으로 쓴 것이 이 사건 대응의 특징이었습니다.
검사는 도주치상과 함께 검토된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위반(치상)까지 모두 증거불충분 혐의없음으로 판단했습니다. 영상에 급제동 장면이 없어 의뢰인 때문에 급제동했다고 보기 어렵고, 접촉이 없고 의뢰인이 사고를 몰랐으며 구호할 상황도 없어 도주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고, 주관적 진술에 따른 진단서만으로는 상해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였습니다. 의뢰인은 면허와 생업을 지켰습니다.
비슷해 보이는 비접촉 사고라도 영상과 진술 내용에 따라 결론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혐의없음(증거불충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