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 사고에서 ‘보행자’와 ‘횡단보도’는 어디까지인가
횡단보도 근처에서 사고가 나면 운전자는 대개 두 가지를 묻습니다. “상대가 자전거를 타고 있었는데도 보행자인가”, “횡단보도에서 몇 걸음 벗어나 있었는데도 횡단보도 사고인가”.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횡단보도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이 12대 중과실이어서, 해당 여부에 따라 보험과 합의의 효과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판례와 정부 해석으로 확인된 범위에서 그 경계를 정리합니다.
보호의무의 기본 구조
도로교통법은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거나 통행하려고 할 때 운전자가 횡단보도 앞에서 일시정지해 보행자의 횡단을 방해하거나 위험을 주지 않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겨 사람을 다치게 하면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12대 중과실이 되어 종합보험이나 합의가 있어도 공소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결국 ‘보행자’였는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었는지가 출발점입니다.
자전거·킥보드를 탄 채 건넌 경우
도로교통법은 자전거와 개인형 이동장치(전동킥보드 등)를 ‘자전거등’으로 묶어 차로 취급하고, 자전거등의 운전자가 횡단보도를 이용해 도로를 건널 때는 자전거등에서 내려 끌거나 들고 걸어가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법제처는 이 규정을 근거로, 자전거를 탄 채 건너는 사람은 운전자가 보호해야 할 ‘보행자’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했습니다. 내려서 끌고 건넌 경우에만 보행자로 보호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운전자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신호를 어겼다면 신호위반이라는 다른 12대 중과실이 문제되고, 그렇지 않더라도 전방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과실이 있으면 일반 교통사고로 처리됩니다. 결국 영상에서 상대가 타고 있었는지, 끌고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첫 단계입니다.
신호에 따라 달라지는 ‘보행자’
- 녹색 신호가 깜빡이는 동안: 대법원은 녹색 점멸 신호는 보행자에게 주는 신호일 뿐 운전자의 보호의무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09. 5. 14. 선고 2007도9598 판결).
- 빨간불로 바뀐 뒤: 녹색 점멸 중 횡단을 시작했다가 보행자 신호가 빨간불로 바뀐 뒤 차량 녹색 신호에 따라 진행하던 차와 부딪힌 사건에서는 횡단보도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대법원 2001. 10. 9. 선고 2001도2939 판결).
- 보행자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 횡단보도 표시가 있으면 신호등이 없어도 횡단보도이고, 바로 옆 교차로의 차량 녹색 신호는 교차로 통행에 관한 것일 뿐 보호의무를 없애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03. 10. 23. 선고 2003도3529 판결).
횡단보도를 조금 벗어난 보행자
보행자가 횡단보도 선 밖으로 몇 걸음 벗어난 지점에서 사고가 난 경우는 최근 판단이 나왔습니다. 헌법재판소는 2026년 5월 21일(2024헌마569), 횡단보도를 벗어난 지점에서 부딪혔다는 이유로 내려진 검사의 불기소 처분을 취소했습니다. 보행자가 차량 통행을 확인하고 횡단보도가 설치된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건널 의사를 드러냈다면, 전체적으로 횡단보도를 통행한 것으로 보아 보호 대상이 된다는 취지입니다. ‘통행하려고 하는 때’까지 보호의무를 넓힌 2022년 개정 취지도 함께 고려됐습니다.
또 대법원은 횡단보도 보호의무 위반이 상해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면, 다친 사람이 사고 당시 횡단보도 밖에 있었더라도 특례 예외가 적용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11. 4. 28. 선고 2009도12671 판결). 사고 지점의 선 안팎만으로 결론이 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횡단보도와 상관없는 무단횡단
반대로 보행자가 횡단보도와 떨어진 곳에서 무단횡단했다면 횡단보도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은 문제되지 않고, 운전자에게 일반적인 과실이 있었는지를 따집니다. 이때는 보행자를 발견할 수 있었던 시점, 당시 속도, 제동으로 피할 수 있었는지가 핵심이며, 피할 수 없었다고 인정되면 처벌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리
횡단보도 사고의 경계는 ‘선 안이냐 밖이냐’, ‘두 발로 걸었느냐’처럼 단순하지 않습니다. 상대가 무엇을 타고 있었는지, 충돌 순간의 신호가 무엇이었는지, 건널 의사를 어떻게 드러냈는지를 영상으로 하나하나 확인해야 적용 조항이 정해집니다. 같은 장소의 사고라도 이런 세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