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아파트 단지 사고와 도로교통법, 어디까지 적용되나
마트 주차장에서 출차하다 보행자와 부딪히거나, 아파트 단지 안 통로에서 아이와 접촉하는 사고는 생각보다 자주 일어납니다. 이때 많은 분이 “여기는 도로가 아니라서 괜찮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말입니다. 어떤 법은 장소와 상관없이 적용되고, 어떤 법은 그곳이 법에서 말하는 ‘도로’일 때만 적용됩니다. 이 글에서는 그 경계를 정리합니다.
법이 말하는 ‘도로’의 뜻
도로교통법 제2조 제1호는 도로법상 도로, 유료도로, 농어촌도로 외에 “현실적으로 불특정 다수의 사람 또는 차마가 통행할 수 있도록 공개된 장소로서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할 필요가 있는 장소”도 도로로 봅니다. 그래서 아파트 단지나 주차장이라도 실제 이용 방식에 따라 도로가 될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판례가 본 구체적 기준
- 넓은 아파트 단지 안 통행로가 사실상 외부 차량과 사람에게 열려 있었다면 도로로 본 사례(대법원 2002도3190)
- 건물 사이 ‘ㄷ’자 공간에 주차구획을 그은 통로는 주차를 위한 통로일 뿐 도로가 아니라고 본 사례(대법원 2004도6779)
- 지하주차장은 단지 규모, 차단 시설, 경비원 통제, 외부인 이용 가능성 등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다고 한 사례(대법원 2017도17762)
장소와 상관없이 적용되는 법
사람이 다친 사고에 적용되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은 도로에서 난 사고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대법원은 이 법의 교통사고가 차의 교통으로 발생한 모든 경우에 적용된다고 했습니다(대법원 96도1848). 도주치상도 마찬가지로, 교회 주차장에서 사람을 다치게 하고 떠난 운전자에게 도주차량 규정을 적용했습니다(대법원 2004도3600).
도로교통법 안에서도 ‘운전’의 정의(제2조 제26호)는 음주운전(제44조), 약물운전(제45조), 사고발생 시 조치(제54조 제1항)와 그 처벌 조항, 주·정차 차량 손괴 후 인적 사항 미제공(제156조 제10호), 도로 외의 곳에서의 보행자 보호(제27조 제6항 제3호)에 대해서는 도로 외의 곳을 포함한다고 정합니다. 주차장에서 술을 마시고 차를 몇 미터 옮겼다가 적발되면 음주운전이 되고, 단지 안에서 사람을 다치게 하고 떠나면 사고후미조치와 도주치상이 함께 문제 되는 이유입니다.
‘도로’일 때만 적용되는 법
위 목록에 없는 조항은 도로에서의 운전을 전제로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무면허운전입니다. 대법원 2017도17762 판결은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의 무면허운전 사건에서, 그 주차장이 도로인지 심리하지 않고 유죄로 본 원심을 다시 판단하라고 돌려보냈습니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12대 중과실 예외도 도로교통법 위반을 전제로 하는 항목이 많아, 사고 지점이 도로가 아니면 적용 여부가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아파트 단지 안 횡단보도 사고에서 이 문제가 사회적 논란이 됐고, 이후 도로교통법에는 도로 외의 곳에서 보행자 옆을 지날 때 안전거리를 두고 서행하거나 일시정지할 의무가 들어갔습니다.
보험과 처벌의 관계
단지 안 사고라도 12대 중과실 등 예외에 해당하지 않고 종합보험에 가입돼 있다면 원칙적으로 공소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다만 피해자가 중상해를 입었거나 사고 후 조치 없이 떠났다면 보험이 있어도 처벌될 수 있습니다. 결국 장소보다 ‘무엇을 했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사고 직후 현장에서 챙길 것
단지나 주차장 사고는 도로보다 CCTV가 많은 편이지만 보관 기간이 짧은 경우가 많습니다. 관리사무소에 영상 보존을 바로 요청하고, 차단기 위치, 경비실, 안내 표지, 주차구획선이 보이도록 현장 사진을 넓게 찍어 두세요. 이 자료는 ‘도로’ 여부를 다툴 때뿐 아니라 과실 정도와 피해자의 움직임을 확인할 때도 쓰입니다. 피해자가 아이라면 보호자와의 연락 경위도 기록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이 다쳤다면 단지 안이라는 이유로 현장을 떠나지 말고 구호와 연락처 제공을 먼저 해야 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정리
단지·주차장 사고에서 확인할 순서는 이렇습니다. 첫째, 사람이 다쳤는지와 사고 후 조치를 했는지. 이 부분은 장소와 무관하게 적용됩니다. 둘째, 무면허나 일부 법규 위반이 문제라면 사고 지점이 도로인지. 이 판단에는 차단기, 경비 통제, 외부 차량 출입 같은 현장 사정이 필요하니 사진과 관리사무소 자료를 일찍 확보하는 것이 좋습니다. 같은 단지라도 사고 지점에 따라 결론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