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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 & LEE · 변호사칼럼
교통사고를 보는,
법률의 시선.

사건의 쟁점과 절차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법률 정보입니다.

사고후미조치와 도주치상, 무엇이 갈림길인가: 세 가지 질문

교통사고 뒤 현장을 떠났다가 경찰 연락을 받으면 대개 “뺑소니”라는 말부터 듣게 됩니다. 그런데 수사 서류에 적히는 죄명은 크게 둘로 나뉩니다. 하나는 도로교통법의 사고후미조치, 다른 하나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도주치상입니다. 이름은 비슷하지만 법정형도, 면허에 미치는 영향도, 다툴 지점도 다릅니다. 어느 쪽으로 분류되느냐가 사건 전체의 무게를 정하는 만큼, 둘이 갈리는 기준을 정확히 아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두 죄명의 기본 구조

도로교통법 제54조 제1항은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물건을 부순 교통사고를 낸 운전자에게 즉시 정차해 구호 등 필요한 조치를 하고 피해자에게 인적 사항을 주도록 합니다. 이를 어기면 제148조에 따라 5년 이하 징역 또는 1천5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집니다. 이것이 사고후미조치입니다. 물건만 부순 사고에도 적용된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도주치상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운전자의 과실로 사람이 다쳤고, 운전자가 그 사실을 알면서도 구호 등의 조치 없이 떠난 경우입니다. 법정형은 1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 3천만 원 이하 벌금으로, 하한이 정해져 있어 사고후미조치보다 훨씬 무겁습니다.

첫 번째 갈림길: 사람이 다쳤는가

도주치상은 ‘상해’를 전제로 합니다. 피해자가 진단서를 냈더라도 치료가 필요 없을 정도로 극히 경미해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었다면 형법상 상해로 보지 않는 것이 판례입니다. 이 경우 도주치상은 성립하지 않고, 남는 것은 사고후미조치 여부입니다. 실제 사건에서 도주치상은 무죄가 되고 사고후미조치만 벌금형이 선고되는 결론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두 번째 갈림길: 다친 사실을 알았는가

도주치상은 고의범입니다. 대법원은 운전자가 사고로 피해자가 다친 사실을 인식하고도 구호 등의 의무를 이행하기 전에 현장을 떠나, 사고 낸 사람이 누구인지 확정할 수 없는 상태를 만든 경우를 도주로 봅니다(대법원 97도2475, 2012도1474 등). 부딪힌 사실 자체를 몰랐다면 도주치상은 물론 사고후미조치도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부딪힌 것은 알았지만 사람이 다쳤을 가능성까지는 인식하지 못했다면, 도주치상은 다툴 수 있어도 사고후미조치는 남을 수 있습니다.

세 번째 갈림길: 구호가 실제로 필요했는가

대법원은 사고 경위, 피해자의 나이와 상해 정도, 사고 후 정황을 종합해 구호조치가 필요 없었다고 인정되면 현장을 떠났어도 도주치상이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피해자와 직접 대화해 아픈 곳을 물었거나 적어도 정차해 상태를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다면, 구호가 필요 없었다고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대법원 2007도2085). 신원 자료를 건넸다는 사정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대법원은 구호 의무를 이행하기 전에 떠났다면 신원 확인 자료를 줬더라도 도주에 해당한다고 했습니다(대법원 2004도250).

사고후미조치에서 다투는 지점

사고후미조치는 피해자의 손해를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도로의 위험과 장해를 없애 교통을 원활하게 하려는 규정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조치의 정도는 사고 내용과 피해 정도에 따라 상식적으로 요구되는 수준으로 판단됩니다. 다만 대법원은 경미한 물적 피해에 그치고 파편이 흩어지지 않았더라도 인적 사항을 알리지 않고 곧바로 떠났다면 원칙적으로 필요한 조치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보았습니다(대법원 2017도15651).

면허에서 갈리는 것

사람이 다친 사고 후 필요한 조치나 신고를 하지 않으면 면허 취소 사유가 되고, 결격기간은 원칙적으로 4년입니다. 반면 물적 피해만 있는 사고 후 도주는 벌점 15점 기준이 적용됩니다. 형사 결론에서 도주치상이 무혐의나 무죄로 정리되면 그에 따른 처분도 취소되므로, 죄명 다툼은 곧 면허 다툼이기도 합니다.

처벌 수위와 처분 결과의 차이

두 죄명의 차이는 법정형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도주치상은 형의 하한이 있어 벌금형이 나오더라도 최소 500만 원 이상이고, 사망 결과가 겹치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크게 무거워집니다. 반면 사고후미조치는 하한이 없어 사안에 따라 비교적 가벼운 벌금으로 정리되기도 합니다. 공무원이나 운전이 생업인 사람에게는 이 차이가 신분과 생계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에, 처음부터 어떤 죄명으로 다뤄지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리

사고후미조치와 도주치상은 ‘사람이 다쳤는가, 그 사실을 알았는가, 구호가 필요했는가’라는 세 질문에서 갈립니다. 첫 조사에서 이 세 가지에 대한 사실관계를 어떻게 설명하느냐가 이후 처분의 방향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블랙박스 영상, 차량 손상 정도, 피해자의 치료 경과를 시간 순서대로 맞춰 보는 작업이 먼저 필요합니다. 비슷한 사고라도 이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은 사건마다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