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변호사칼럼
YUN & LEE · 변호사칼럼
교통사고를 보는,
법률의 시선.

사건의 쟁점과 절차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법률 정보입니다.

뺑소니 사건의 승부처는 ‘알았는가’: 사고 인식을 판단하는 자료들

뺑소니로 입건된 운전자 가운데 상당수는 “정말 부딪친 줄 몰랐다”고 말합니다. 수사기관도 이 말을 수없이 듣기 때문에, 진술만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 주장이 늘 배척되는 것도 아닙니다. 사고 인식은 운전자의 머릿속 문제이지만, 그것을 판단하는 방법은 철저히 바깥에 남은 자료에 기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자료가 ‘알았다’ 또는 ‘몰랐다’를 말해 주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도주죄가 성립하는 두 단계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제5조의3의 도주치상은 사람을 다치게 하고 도주한 경우 1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무거운 범죄입니다. 대법원은 도주가 되려면 운전자가 사람이 죽거나 다친 사실을 인식하고, 구호 등 필요한 조치를 하기 전에 현장을 떠났어야 한다고 봅니다(대법원 2006도3441). 첫 단계는 ‘인식’, 둘째 단계는 ‘조치 없는 이탈’입니다. 이 글은 첫 단계에 집중합니다.

인식을 판단하는 객관적 자료

수사기관은 운전자의 말보다 사고 현장과 차량에 남은 흔적을 먼저 봅니다. 그리고 그 흔적을 ‘보통의 운전자라면 이 정도 충격을 느꼈을까’라는 기준으로 평가합니다. 따라서 ‘몰랐다’는 주장은 ‘느낄 수 없었다’는 객관적 설명으로 바뀌어야 설득력을 가집니다.

충격의 위치와 형태

차량 어느 부위가 어떤 방식으로 닿았는지가 출발점입니다. 운전석에서 보이지 않는 뒷부분이나 바퀴 옆면이 스치듯 닿았다면 운전자가 느끼기 어려웠을 가능성이 커집니다. 실제로 교차로에서 다른 차를 피하다 상대 차량 뒷부분을 바퀴 고무만으로 스친 사건은, 경찰이 송치했지만 몰랐다는 정황이 하나씩 확인되면서 검사가 혐의없음으로 판단했습니다.

차량의 크기와 구조

대형 화물차는 무게와 구조 때문에 작은 충격이 운전석까지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장축 화물트럭으로 유턴하며 후진하다 뒤 승용차를 밀고 떠난 기사가 도주치상으로 입건된 사건에서는 차량 중량과 구조, 운전자의 신체 조건이 함께 고려되어 불송치(혐의없음)로 끝났습니다.

사고 직후의 운행 모습

사고를 알았다면 보통 속도를 높이거나 경로를 바꾸어 현장에서 멀어지려 합니다. 반대로 평소처럼 주행하거나 현장 쪽으로 되돌아오는 모습은 인식이 없었다는 정황이 됩니다. 비 오는 날 여러 차로를 연달아 바꾸다 앞차 뒷범퍼를 스친 사건에서는 CCTV에 담긴 접촉 형태와 함께, 사고 뒤 유턴해 현장을 다시 지나간 모습이 인정되어 경찰 불송치로 종결되었습니다.

도주할 이유가 있었는가

음주나 무면허처럼 현장을 피해야 할 사정이 있었는지도 검토됩니다. 그런 사정이 있었다면 그 자체로 떠날 이유가 있었다고 의심받기 쉽습니다. 반대로 보험에 가입되어 있었고 다른 위반 사유도 없었다면, 굳이 현장을 피할 이유가 없었다는 점이 일부러 떠났다는 의심을 약하게 하는 자료가 됩니다.

거짓말탐지 결과가 불리하다면

수사 과정에서 거짓말탐지 검사를 권유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앞의 화물트럭 사건에서는 거짓 반응이 나와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충격 형태와 차량 조건 같은 객관적 자료가 모이면서 결론은 혐의없음이었습니다. 검사 결과는 여러 판단 자료 가운데 하나로 다루어진다는 점을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알았던 경우에는 무엇이 남는가

사고를 인식했다면 다음은 조치의 문제입니다. 대법원은 피해자에게 신분증만 건네고 일방적으로 떠난 경우도 도주로 보았습니다(대법원 2010도16027). 반면 객관적으로 구호조치가 필요 없었던 상황이라면 도주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그런 사정은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대법원 2007도2085). 인식을 인정한 사건에서는 경위 설명과 피해 회복이 중심이 됩니다. 직진 신호에 유턴하다 오토바이와 부딪치고 떠난 운전자가 혐의를 인정한 뒤 합의와 양형 자료를 정리해 선고유예를 받은 사례도 있습니다.

사고를 알았는지 스스로도 확신이 서지 않는 상태에서 연락을 받았다면, 기억에 의존해 진술을 서두르기보다 먼저 자신의 블랙박스와 이동 경로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첫 조사에서 “뭔가 느낌은 있었다”고 말한 것이 기록되면 이후 인식이 없었다는 주장과 충돌하게 됩니다. 반대로 영상을 보고 접촉을 인식할 수 있었다고 판단된다면, 그때는 인식을 다투기보다 피해 회복과 경위 설명에 집중하는 편이 결과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리

뺑소니로 연락을 받았다면 사고 당시 영상과 이동 경로를 먼저 확보한 뒤 첫 조사 전에 상담을 받으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