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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 & LEE · 변호사칼럼
교통사고를 보는,
법률의 시선.

사건의 쟁점과 절차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법률 정보입니다.

피할 수 없었던 사고는 처벌되지 않습니다: 예견·회피가능성의 의미

교통사고 형사사건은 대부분 과실범입니다. 일부러 사람을 해친 것이 아니라 운전자로서 지켜야 할 주의를 다하지 못했다는 점을 처벌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반대로, 운전자가 주의를 다했더라도 도저히 막을 수 없었던 사고라면 어떨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처벌의 근거가 사라집니다. 다만 그 ‘막을 수 없었다’는 사정은 운전자 쪽에서 구체적인 자료로 보여 주어야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과실은 결과가 아니라 ‘주의의무 위반’입니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제1항은 업무상 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사람을 사상케 한 경우를 처벌합니다. 여기서 과실이 인정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사고 위험을 미리 알 수 있었는가(예견가능성), 다른 하나는 알았다면 결과를 피할 수 있었는가(회피가능성)입니다. 보행자가 숨졌다는 결과가 아무리 무겁더라도, 이 두 요소 중 하나가 부정되면 운전자에게 형사책임을 묻기 어렵습니다.

시간과 거리로 따지는 회피가능성

회피가능성은 막연한 주장으로는 인정되지 않습니다. 결국 ‘몇 초 전에, 몇 미터 앞에서 위험을 볼 수 있었는가’를 계산하는 문제로 바뀝니다. 이때 쓰이는 개념은 다음과 같습니다.

운전자가 보행자를 처음 발견할 수 있었던 지점까지의 거리가 정지거리보다 짧다면, 아무리 빨리 반응했더라도 사고를 피할 수 없었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발견할 수 있었던 지점’을 어떻게 잡느냐입니다. 운전자가 실제로 본 시점이 아니라, 주의를 기울였다면 볼 수 있었던 시점이 기준이 됩니다. 그래서 야간 조명, 피해자의 옷 색깔, 앞차나 주차 차량 같은 시야 장애물이 계산에 큰 영향을 줍니다. 같은 거리라도 낮과 밤, 맑은 날과 비 오는 날의 판단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이런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중앙분리대가 있는 도로에서 앞서가던 화물차에 가려 있던 보행자가 무단횡단하다 숨진 사건에서는, 보행자를 발견할 수 있었던 거리가 30m였던 반면 당시 속도에서의 정지거리는 51m라는 계산을 제시해 회피 불가능을 입증했고, 혐의없음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우회전 직후 골목 내리막에 누워 있던 사람을 역과한 사망사고에서는 블랙박스에 사람이 비친 시간이 0.2초에 불과하다는 점과 인지반응시간을 근거로 피할 수 없었음을 밝혀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더 어려운 경우는 운전자에게도 잘못이 있었던 사건입니다. 녹색 신호에 직진하다 적색 신호에 길을 건너던 보행자와 충돌한 사망사고에서는 과속 사실까지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나 재판 중 감정을 통해 제한속도를 지켰더라도 사고를 피할 수 없었다는 결과가 나왔고, 과속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가 부정되어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감정은 언제, 어떻게 활용되는가

이런 판단은 대부분 블랙박스 영상과 현장 자료를 기초로 한 감정을 거칩니다. 영상의 프레임으로 속도와 거리를 산출하고, 조명·도로 구조·시야를 가리는 차량 같은 조건을 반영합니다. 수사기관이 의뢰한 감정이 운전자에게 불리하게 나왔다면 전제 조건이 정확했는지를 검토하고, 필요하면 다른 기관의 분석을 받아 비교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감정은 수사 단계에서도, 재판 중에도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회피 불가능 주장에서 조심할 점

회피가능성을 다투더라도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사과와 피해 회복 노력은 별개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실제로 앞의 골목 사망사고에서도 무죄 판단과 별도로 유족과의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사고 직후 조사에서 “제가 앞을 제대로 못 봤습니다”처럼 과실을 단정하는 진술을 해 두면 이후 회피 불가능을 주장하기가 어려워지므로, 기억과 영상이 일치하는지부터 차분히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고 당시 속도 역시 회피가능성 계산의 기초가 되므로, 스스로 기억하는 속도를 성급하게 말하기보다 영상 분석 결과를 기다리는 편이 안전합니다. 감정에 필요한 블랙박스 원본 파일, 사고 지점의 도로 사진, 사고 시각의 조명 상태 같은 자료는 덮어쓰기 되기 전에 따로 보관해 두어야 합니다.

정리

영상과 현장 자료가 남아 있을 때 검토를 시작해야 선택지가 넓어지므로, 조사 전에 상담을 받아 보시기를 권합니다.